참고:
https://margincall.tistory.com/7
1990년대 후반 월스트리트에는 '질 수 없는 펀드'처럼 보이는 회사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이었다.
채권시장의 전설적인 트레이더였던 존 메리웨더가 1994년 설립했고, 금융공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인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스 등이 참여했다. 특히 머튼과 숄스는 파생상품 가격결정 방법을 발전시킨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숄스는 수상 당시 소속 기관 자체가 LTCM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LTCM은 단순한 헤지펀드가 아니었다. 최고의 트레이더와 경제학자, 수학자들이 모여 금융시장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집단에 가까웠다.
그런 LTCM은 불과 몇 년 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파산 위기에 빠진다.
문제는 그들이 수학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수학적으로 매우 희박하다고 계산했던 사건이 실제 시장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LTCM은 무엇을 하던 펀드였나
LTCM의 대표적인 투자 방법은 이른바 수렴거래(convergence trade)였다.
예를 들어 두 채권의 성격과 위험이 거의 비슷한데 다음과 같은 가격 차이가 발생했다고 가정한다.
- 채권 A의 가격: 100
- 채권 B의 가격: 98
LTCM은 가격이 비싼 A를 팔고, 상대적으로 싼 B를 매수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채권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 수익을 얻는다.
핵심은 시장이 오를지 내릴지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자산 사이에 발생한 비정상적인 가격 차이가 결국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방식이다.
LTCM은 이러한 방법을 미국 국채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의 국채, 회사채, 모기지 관련 증권, 주식, 스왑과 옵션 등 다양한 시장에 적용했다. 연준 자료에서는 이를 시장 방향과 무관하게 수익을 노리는 '시장중립적'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정말 잘 나갔다
초기의 성과만 보면 LTCM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연방준비제도 역사 자료에 따르면 LTCM의 수익률은 다음과 같았다.
연도수익률
| 1994년 | 약 20% |
| 1995년 | 약 43% |
| 1996년 | 약 41% |
| 1997년 | 약 17% |
몇 년 동안 이런 성과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LTCM의 모델에 강한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LTCM이 찾아내는 가격 차이는 대부분 매우 작았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자산이 101원이 되는 정도의 차이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면 자기자본만 사용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LTCM은 빌린 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 1. 엄청난 레버리지
LTCM의 전략은 작은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따라서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거래 규모를 크게 만들어야 했다.
그 방법이 바로 레버리지(leverage)였다.
1997년 말 LTCM은 자기자본 1달러당 약 30달러의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LTCM은 투자자들에게 자본 일부를 돌려주면서도 기존 투자 규모를 크게 줄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레버리지는 더욱 높아졌다.
1998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미국 SEC가 당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8월 31일 LTCM의 자본은 약 23억 달러로 줄어들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약 1,070억 달러 규모의 거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산 방식에 따라 레버리지는 한때 50배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됐다.
파생상품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욱 커진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당시 LTCM의 파생상품 계약 명목금액을 약 1조4,000억 달러로 제시했다. 다만 파생상품 명목금액 자체가 실제 손실 가능 금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LTCM은 작은 가격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대신, 그 작은 차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돈을 걸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 2. 가격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믿음
LTCM의 전략에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었다.
비슷한 자산 사이의 비정상적인 가격 차이는 결국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다.
평상시에는 상당히 합리적인 가정이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결국’이 언제인가였다.
가격 차이가 3개월 뒤 정상화되더라도 투자자가 3개월을 버틸 자금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특히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투자자는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전에 증거금을 추가로 요구받을 수 있다.
방향은 맞았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LTCM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제 3. 1998년 러시아가 예상 밖의 선택을 하다
결정적인 충격은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이 불안해졌고, 1998년에는 러시아의 재정 상황까지 악화됐다.
결국 1998년 8월 러시아는 루블화 평가절하와 함께 일부 국내 국채에 대한 지급중단·채무재조정을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공포가 확산됐다.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을 팔고 미국 국채 같은 안전하고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으로 몰려갔다.
이른바 Flight to Quality, 즉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LTCM 입장에서 문제는 심각했다.
LTCM은 여러 시장에서 벌어진 가격 차이가 좁혀질 것이라고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사태 이후 시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좁혀져야 할 가격 차이가 오히려 더 크게 벌어졌다.
시장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LTCM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다양했다.
미국 채권도 있었고 유럽 채권도 있었으며 주식과 파생상품도 있었다.
따라서 위험도 분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의 행동이 단순해졌다.
위험한 것은 팔고 안전한 것은 산다.
그러자 서로 관계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자산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독립적으로 움직였던 자산들의 상관관계가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포트폴리오 분산효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문제 4. 손실이 발생하자 레버리지가 다시 공격해왔다
LTCM의 포지션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거래 상대방들은 추가 담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즉 마진콜(margin call)이 발생했다.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가격 하락 → 손실 발생 → 추가 담보 요구 → 자산 매각 → 가격 추가 하락
레버리지가 낮았다면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십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던 LTCM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1998년 8월 한 달 동안 LTCM은 자산가치의 약 44%를 잃었다. 연초부터 8월까지 손실은 약 25억 달러에 달했으며, SEC 자료에서는 그 가운데 약 21억 달러가 8월 한 달 동안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다.
몇 주 만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헤지펀드 가운데 하나가 파산 직전까지 밀려난 것이다.
LTCM 하나가 망하는데 왜 미국 중앙은행이 움직였을까
일반적인 투자회사가 투자에 실패했다면 투자자들이 손실을 감수하고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LTCM은 규모가 너무 컸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과 은행들이 LTCM에 돈을 빌려주거나 파생상품 거래 상대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LTCM이 갑자기 파산하면 수많은 금융기관이 동시에 LTCM의 포지션을 정리해야 했다.
문제는 LTCM이 보유한 자산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모두가 동시에 같은 자산을 팔면 가격이 급락한다.
가격이 떨어지면 LTCM과 전혀 관계없는 금융기관까지 손실을 입는다.
그 결과 다시 자산을 팔고, 가격이 추가 하락하는 연쇄적인 강제청산(fire sale)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LTCM을 조사한 뒤 이러한 상황이 금융시장 전체의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월스트리트가 LTCM을 구제하다
1998년 9월 23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중재 아래 주요 금융회사들이 모였다.
결국 14개 은행과 증권회사가 약 36억2,500만 달러를 LTCM에 투입하고 펀드 지분 90%를 가져가는 방식의 구제안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하나 구분할 부분이 있다.
흔히 LTCM 사건을 '연준의 구제금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미국 정부나 연준이 세금을 직접 투입한 것은 아니다.
뉴욕 연은이 금융회사들을 모으고 협상을 중재했지만 실제 자금을 투입한 것은 LTCM의 거래 상대방이던 민간 금융기관들이었다.
LTCM은 즉시 파산하지 않고 포지션을 단계적으로 정리했고, 1999년 말까지 컨소시엄이 투입한 자금 대부분을 돌려줄 수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LTCM은 1998년에 공식적으로 파산한 것이 아니라 파산 직전 민간 자본으로 구제된 사건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공식이 틀렸던 것일까
LTCM 사건이 유명해지면서 자주 등장하는 설명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금융공학 모델이 실패했다."
절반 정도만 맞는 표현이다.
머튼과 숄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파생상품 가격결정 이론에 대한 연구였으며, 이 이론 자체가 LTCM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LTCM의 핵심적인 문제는 다음 요소가 결합된 것이었다.
과도한 레버리지 + 유동성 위험 + 극단적인 시장 상황에 대한 과소평가 + 비슷한 거래의 집중
SEC 역시 LTCM 문제를 수학적 모델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낮은 확률의 극단적 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위험관리 실패로 평가했다.
수학이 틀렸다기보다 모델이 설명할 수 있는 세계와 실제 금융시장의 세계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 문제였던 셈이다.
LTCM 사태가 남긴 교훈
LTCM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재도 투자에 실패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시장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첫째는 레버리지의 위험이다. 정확도가 높은 전략이라도 레버리지가 지나치게 높으면 단 한 번의 예외적인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둘째는 유동성 위험이다. 장기적으로 가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판단이 맞더라도 그때까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강제로 포지션을 정리해야 한다.
셋째는 상관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상시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자산들이 금융위기에서는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넷째는 모델 위험(model risk)이다. 금융모델은 현실을 단순화해 설명하는 도구이지 현실 자체가 아니다.
다섯째는 시스템 리스크다. 하나의 헤지펀드가 충분히 많은 금융기관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펀드의 실패가 금융시장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LTCM 이후 미국 정부의 관련 보고서 역시 과도한 레버리지를 금융시스템 위험의 핵심 요소로 지적했다.
천재들이 실패한 이유
LTCM에는 당대 최고의 금융학자와 트레이더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계산도 대부분의 시간에는 맞았다.
문제는 투자에서 중요한 것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자주 맞느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99번 작은 수익을 내더라도 한 번의 손실이 99번의 수익보다 크다면 투자 전략은 결국 실패한다.
특히 빌린 돈을 수십 배 사용한다면 그 한 번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LTCM이 남긴 가장 유명한 교훈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은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이 투자자가 가장 많은 돈을 잃는 순간이기도 하다.
LTCM은 금융공학이 쓸모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정교한 금융공학이라도 레버리지와 유동성, 인간의 공포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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