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0년 영국에서 벌어진 남해회사 버블 이야기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설명한 아이작 뉴턴도 주식투자에서는 큰 손실을 보았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천재도 욕심을 부리면 망한다'는 교훈으로만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남해회사에는 국가의 빚을 정리하는 금융사업, 해외무역에 대한 기대,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함께 얽혀 있었다.
뉴턴도 금융을 전혀 모르는 초보 투자자가 아니었다.
이 사건은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무작정 믿어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럴듯한 사업과 실제 자산이 있는 회사라도, 주가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위험한 투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 남해회사는 무엇을 하던 회사였나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는 1711년 영국에서 설립되었다.
이름만 보면 남쪽 바다를 오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무역회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설립의 핵심 배경은 영국 정부가 전쟁으로 쌓인 빚을 정리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정부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이자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남해회사는 이들에게 그 권리를 넘기는 대신 회사 주식을 받도록 제안했다. 회사가 정부의 채권자가 되고, 기존 채권자는 회사의 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정부가 남해회사에 이자를 지급하면, 회사는 이를 주주 배당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해외사업의 수익까지 더해진다는 구상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여러 형태로 흩어진 채무를 정리하고 이자 부담을 낮출 기회였다.
다만 당시의 ‘해외무역’을 낭만적인 항해사업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이후 확보한 사업권에는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아 스페인령 아메리카에 공급하는 노예무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회사의 성장 이야기는 식민지 지배와 인신매매라는 폭력적인 현실 위에 놓여 있었다.
2. 정부의 빚을 주식으로 바꾸면 왜 돈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1720년 남해회사는 더 큰 규모의 국가채무를 회사 주식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주가가 높을수록 회사에 유리한 구조가 이 과정에 들어 있었다.
이해를 위한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회사가 1,000파운드 상당의 채권을 넘겨받으면서 주식으로 대가를 지급한다고 가정한다.
주식 한 단위를 100파운드로 평가하면 10단위가 필요하지만, 200파운드로 평가하면 5단위로도 같은 금액을 맞출 수 있다.
실제 전환 조건은 더 복잡했지만, 높은 주가가 채무 전환과 추가 주식 판매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방향은 이와 같다.
문제는 주가 상승이 사업의 성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주가가 오르면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고, 그렇게 커진 사업에 대한 기대가 다시 주가를 밀어 올리는 구조였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주식을 비싸게 팔아 돈을 조달하는 능력과, 사업으로 지속적인 이익을 내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전자가 후자를 대신할 수는 없다.
3. 주가가 오르자 사업보다 주가가 더 강력한 광고가 되었다
남해회사에는 사람들이 믿을 만하다고 느낄 요소가 있었다. 정부의 채무를 다루는 회사였고, 의회의 승인을 받은 사업을 추진했으며, 해외무역의 가능성도 내세울 수 있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정책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가 함께 붙은 종목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거래한다는 사실이 주주의 원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지급할 이자가 존재하더라도, 그 수익에 비해 주식을 너무 비싸게 사면 투자자는 손실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주식 청약대금을 나누어 내는 방식도 투자 참여를 부추겼다.
처음부터 전액을 마련하지 않아도 큰 규모의 투자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련 대출과 신용거래까지 생각하면, 주가가 내려갈 때의 위험도 함께 커지는 구조였다.
남해회사 주가는 1720년 여름 액면 100파운드의 주식 지분이 약 1,000파운드에 거래될 정도로 치솟았다.
여기서 100파운드는 액면금액이므로, 이를 곧바로 모든 투자자의 매입가격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당시 시세는 거래 형태와 주식배당 조정 여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가격이 오르는 동안에는 '회사가 얼마를 벌 수 있는가'보다 '다른 사람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더 눈에 들어오기 쉽다.
남해회사 이야기가 지금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4. 뉴턴도 정말 돈을 잃었을까
뉴턴이 남해회사 투자로 큰 손실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수학자 앤드루 오들리즈코는 남아 있는 거래 기록과 관련 문서를 분석해, 뉴턴이 초기에 이익을 실현했다가 다시 투자하여 큰 손실을 입었다는 설명을 뒷받침했다.
뉴턴은 당시 영국 조폐국의 책임자였으며, 국채와 회사 주식에 투자한 경험도 있었다.
과학만 알던 사람이 우연히 주식시장에 들어왔다가 돈을 잃은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뉴턴은 1720년 봄 남해회사 주식을 매도해 이익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 더 높은 가격에 다시 투자했고, 다른 자산까지 남해회사 주식으로 옮겼다. 주가가 무너지면서 앞서 얻은 이익과 기존 재산의 상당 부분이 줄어들었다.
다만 그가 왜 다시 매수했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증거는 부족하다. 남들이 돈을 버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는 설명은 가능한 해석이지만, 그의 속마음이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흔히 알려진 손실액은 약 2만 파운드다. 이 숫자 역시 모든 거래가 완벽하게 정리된 장부에서 확정된 금액은 아니다. 손실을 계산하는 기준에 따라 추정치가 달라진다. 따라서 ‘약 2만 파운드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지며, 연구도 상당한 손실을 뒷받침한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다.
뉴턴이 전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설명도 과장이다.
그는 큰 손실을 겪었지만 이후에도 상당한 재산을 보유했다.
5.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의 진실
남해회사 버블을 소개할 때 뉴턴의 말로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다.
그러나 오늘날 알려진 완성형 문장을 뉴턴의 정확한 발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들리즈코가 검토한 초기 전승에는 뉴턴이 사람들의 광기를 계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반면 천체의 움직임과 대비하는 표현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설명된다.
발언 시점도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폭락 이후의 탄식이었다고 확정할 수 없다.
이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언의 진위에 달려 있지 않다.
뛰어난 지식과 계산 능력이 있더라도, 군중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유지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6. 거품은 왜 무너졌을까
정부가 지급하는 이자는 무한정 늘어날 수 없었고, 해외사업도 높아진 주가를 정당화할 만큼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했다. 투자자들이 기대한 수익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졌다.
투자자의 신뢰가 흔들리고 매물이 늘어나면, 상승을 도왔던 신용거래는 부담으로 돌아온다. 주식의 가치는 줄어드는데 갚아야 할 돈이나 납입 의무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더 높은 가격에 사줄 사람을 기대하던 거래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1720년 9월 주가는 급격하게 무너졌고, 10월에는 고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 되었다.
사건 이후 조사에서는 회사와 정치권 사이의 부정한 거래가 드러났다. 의회 조사에 따라 관련자들의 재산이 몰수되기도 했다. 남해회사 버블은 투자자들의 과열뿐 아니라, 사업을 추진한 사람들과 권력 사이의 이해관계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7. 주가 폭락이 회사의 즉각적인 소멸을 뜻하지는 않았다
남해회사 주가가 폭락했다고 해서 회사가 그날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사는 재편을 거쳐 정부채무와 관련한 지급 업무를 수행하며 19세기 중반까지 존속했다.
이 사실은 버블을 이해할 때 유용하다. 거품이 생기려면 반드시 아무것도 없는 가짜 회사가 필요하지 않다. 실제 수입과 자산이 존재하더라도, 투자자가 그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면 거품이 될 수 있다.
회사에 가치가 있다는 말과 지금의 주가가 적절하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남해회사 버블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8. 남해회사 버블이 남긴 질문
이 사건을 오늘날의 투자에 비추어 보면 세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사람들이 주식을 사주는 것 외에, 회사가 실제로 돈을 버는 방법은 무엇인가.
- 정부의 지원이나 유명인의 참여를 원금 보장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 투자 판단을 바꾼 이유가 새로운 사실 때문인가, 다른 사람의 수익을 놓칠 것 같은 불안 때문인가.
뉴턴의 실패가 흥미로운 이유는 천재가 실수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한 번 이익을 확보했던 투자자조차 다시 판단을 바꾸어 위험한 가격에 뛰어들 수 있다는 데 있다.
남해회사 버블은 300여 년 전의 사건이지만, 그 앞에서 투자자가 마주하는 질문은 여전히 익숙하다. 내가 이 자산을 사려는 이유는 앞으로 만들어낼 수익 때문인지, 아니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인지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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