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땅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

일본 버블경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오늘날에는 과장된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말에는 땅값과 주가가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당시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부동산의 평가액이 커지는 것과 나라 전체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땅값이 두 배가 되었다고 해서 그 위의 가게가 물건을 두 배로 팔거나, 공장이 제품을 두 배로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버블의 핵심은 자산가격 상승을 믿고 빚을 늘렸다는 데 있었다.

가격이 내려간 뒤에도 빚은 그대로 남았다. 그 부담은 투자자와 기업을 넘어 은행과 경제 전체로 번져 나갔다.

 

도쿄 땅으로 정말 미국을 살 수 있었을까?

당시 일본의 부동산 과열을 설명하는 이야기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 도쿄의 땅값을 미국과 비교하기도 하고, 도쿄 황거 부지의 추정 가치를 캘리포니아 전체 부동산과 비교하기도 한다. 황거와 캘리포니아를 비교하는 이야기는 해외 회고 기사에도 등장한다. 

다만 이를 실제 거래 가능한 금액이나 정밀하게 확정된 통계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비교 시점, 환율, 토지의 범위와 평가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을 산다"는 표현 자체도 토지와 건물, 기업과 국가 전체를 뒤섞는다.

 

일부 지역의 높은 거래가격을 넓은 면적에 적용한 평가액은, 그 땅을 모두 팔아서 손에 쥘 수 있는 현금과 같지 않다.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가격부터 달라진다. 황거처럼 통상적인 매매 대상이 아닌 토지는 가정의 비중이 더욱 크다.

이 표현은 일본의 땅값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상징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플라자 합의 이후, 돈을 빌리기 쉬워졌다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일본·서독·영국·프랑스는 지나치게 강해진 달러의 가치를 낮추는 방향으로 협력했다. 이후 엔화가 빠르게 강해지면서 일본 수출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일본은 경기와 내수를 떠받치기 위해 금융완화에 나섰다. 

 

환율의 영향을 단순한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물건을 1달러에 팔았을 때 환율이 1달러당 240엔이면 240엔을 받는다. 환율이 120엔으로 내려가면 같은 1달러 매출로 받는 돈은 120엔이 된다. 실제 기업은 가격과 비용을 조정하지만, 엔고가 수출기업에 부담이 되는 원리는 이와 같다.

 

일본은행의 공정할인율은 1986년 초 인하가 시작되기 전 5.0%에서 1987년 2월 2.5%로 내려갔다. 이 수준은 1989년 5월까지 유지되었다. 공정할인율은 당시 중요한 정책금리였으며, 일반 가계가 적용받는 대출금리와 같은 수치는 아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빌려 투자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그 돈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새로운 생산시설에 쓰일 수도 있지만, 이미 가격이 오른 땅과 주식을 더 비싸게 사는 데 쓰일 수도 있다.

 

플라자 합의만으로 일본의 버블과 장기 침체가 모두 결정되었다고 보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금융완화에 더해 대출 관행과 감독, 자산가격에 대한 낙관이 어떻게 결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땅값 상승이 다시 대출을 늘렸다

버블이 커지는 과정에서는 토지와 신용이 서로를 밀어 올렸다. 땅값이 오르면 담보의 평가액이 커지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돈을 빌릴 여지가 생긴다. 빌린 돈이 다시 부동산으로 향하면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일본은행 연구는 당시 버블의 특징으로 자산가격 급등, 경기 과열, 통화와 신용의 확대를 함께 지목한다. 저금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와 지나친 낙관도 중요한 요소였다. 

 

가령 1억 엔짜리 건물에서 연간 300만 엔의 순수익이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 수익률은 3%다. 임대수익이 그대로인데 건물값만 2억 엔으로 오르면 수익률은 1.5%로 내려간다.

그런데도 “내년에 2억 5천만 엔에 팔 수 있다”는 기대가 강하면 매수자는 계속 나타날 수 있다. 이때 투자의 근거는 건물이 벌어 주는 돈보다 다음 매수자가 지불할 가격에 가까워진다.

위 예시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산의 가격과 그 자산이 벌어들이는 현금 사이의 거리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가 상승의 조건을 바꾸었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 공정할인율을 2.5%에서 3.25%로 올렸다. 이후 인상이 이어지면서 1990년 8월에는 6.0%에 도달했다. 

1990년 3월에는 대장성이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를 억제하는 지침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내용은 부동산업 대출 증가율을 전체 대출 증가율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모든 부동산 대출을 금지한 조치는 아니었다. 

돈을 빌리는 비용은 올라가고 추가 대출은 어려워졌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에 기대어 투자한 사람들에게 불리한 환경이 된 것이다.

 

따라서 금리 인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붕괴의 원인을 금리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과도한 차입과 높은 가격이 쌓여 있었기에 금융여건의 변화가 큰 충격으로 번질 수 있었다.

주식이 먼저 꺾이고, 부동산이 뒤따랐다

닛케이225는 1989년 12월 29일 종가 38,915.87을 기록했다. 이후 주가가 급락했고, 토지가격은 지역과 용도, 지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990~1991년을 전후해 정점을 지나 하락했다. 두 시장이 같은 날 동시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시기 주요 사건 의미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엔고와 이후 정책 대응의 배경
1987년 2월 공정할인율 2.5% 낮은 차입비용이 지속되는 환경
1989년 5월 공정할인율 인상 시작 금융완화에서 긴축으로 전환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225 종가 38,915.87 당시 주식시장의 정점
1990년 3월 부동산 대출 증가 억제 지침 부동산으로 향하는 신용 확대 제한
1990년 8월 공정할인율 6.0% 차입 부담 확대
1990~1991년 전후 주요 토지가격 지표의 고점 형성 부동산 하락으로 충격 확산
1997~1998년 대형 금융기관 위기 누적된 금융 부실이 본격적으로 표면화

*연표는 위의 일본은행 자료와 아래 ADBI 연구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토지가격의 고점은 지역·용도·지표별로 다르다.

 

가격이 내려가도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기 돈 2천만 엔과 대출 8천만 엔으로 1억 엔짜리 부동산을 샀다고 가정해 보자.

자와 세금, 거래비용은 제외한 계산이다.

구분 구입 당시 가격 30% 하락한 뒤
부동산 가치 1억 엔 7천만 엔
남은 대출 원금 8천만 엔 8천만 엔
자산에서 빚을 뺀 금액 2천만 엔 -1천만 엔

 

자산가격은 30% 떨어졌지만 자기자본은 모두 사라졌다. 부동산을 팔아도 대출 원금 1천만 엔이 남는다. 이것이 차입투자의 손실 확대 효과다.

 

같은 일이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면 은행도 영향을 받는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고, 담보를 팔아도 대출을 모두 메우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대출이 부실채권으로 남는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된 대출과 담보가치 하락이 은행 부실을 키웠다. 은행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 하락도 자본 여력을 약화시켰다. 기업의 어려움과 금융기관의 어려움이 맞물린 것이다.

 

왜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을까?

가격 하락 뒤의 대응도 문제였다. 자산가격과 경기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부실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늦어졌다. ADBI 연구는 초기 대응의 지연과 불충분함이 위기를 장기화한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빚이 무거운 기업은 새 공장을 짓거나 직원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부채를 줄이려 한다. 은행 역시 손실이 쌓이면 새로운 대출에 신중해진다. 돈을 빌리려는 쪽과 빌려주는 쪽이 함께 움츠러들 수 있다.

 

이처럼 민간이 투자와 소비보다 부채 상환을 우선하면서 수요가 약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리처드 쿠가 일본의 장기 침체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 대표적인 관점이다. 금리를 낮추더라도 기업이 추가 차입을 원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더 큰 금융위기로 나타났다. 1997년 야마이치증권과 홋카이도척식은행 등이 무너졌고, 1998년에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이 일시 국유화되었다. 이후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 정리가 진행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은 그 기간 내내 생산과 성장이 완전히 멈췄다는 뜻은 아니다. 회복과 후퇴가 반복되었고, 장기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과 금융 부실이 이어졌다는 표현이다. 이후 수십 년의 경제 문제까지 하나의 사건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주가지수의 회복에는 34년이 넘게 걸렸다

2024년 2월 22일 닛케이225는 39,098.68로 마감하며 1989년의 종가 최고치를 넘어섰다. 약 34년 2개월 만이었다. 

다만 모든 투자자가 원금을 회복하는 데 똑같이 34년을 기다렸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엔화 표시 가격지수의 비교다. 매수 시점과 종목, 배당 재투자, 환율과 물가에 따라 실제 투자성과는 달라진다.

 

이 기록이 보여 주는 것은 기다림의 길이다. 시장 전체가 언젠가 회복하더라도, 투자자가 그때까지 빚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일본 버블은 자산의 평가액과 상환 능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가격이 올라갈 때에는 담보가 든든해 보인다. 그러나 빚을 갚는 순간 필요한 것은 평가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현금이다.

 

땅값이 영원히 오른다는 믿음은 무너질 수 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빌린 돈은 믿음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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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의 닷컴 버블

 

1990년대 말, 주식시장에서는 회사 이름에 닷컴(.com)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기업의 실적보다 앞서 달리던 시기였다.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에 투자한 사람 모두가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미래 산업을 알아보는 일과 적정한 가격에 투자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은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기업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지나치게 앞질렀던 사건이다.

 

1. 닷컴 버블이란?

닷컴 버블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기술 기업으로 투자금이 몰리며 주가가 급등했다가, 2000년부터 급격히 꺼진 현상을 말한다. '닷컴'은 기업들이 웹사이트 주소에 사용하던 .com에서 나온 표현이다.

당시에는 쇼핑과 광고, 정보 검색 등 다양한 사업이 인터넷으로 옮겨 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기존 산업의 규칙이 달라진다는 ‘신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확산되었다.

실제 변화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당시 기술 발전과 전자상거래 확산, 생산성 개선이 투자 열기를 뒷받침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소비자의 실제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투자까지 늘어났다.

 

2. 정말 이름만 바꿔도 주가가 올랐을까

'인터넷 기업이면 무조건 올랐다'는 표현은 과장이다.

모든 기업이 같은 수익률을 기록하거나 끝없이 상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나올 만한 현상은 실제로 관찰되었다.

2001년 『Journal of Finance』에 실린 「A Rose.com by Any Other Name」은 인터넷과 관련된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기업들의 주가 반응을 분석했다. 연구에서는 사명 변경 발표 전후 10일 구간의 누적 초과수익률이 약 74%로 나타났다.

이는 시장 움직임 등을 감안한 비교 기준보다 얼마나 더 올랐는지를 뜻한다. 모든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10일 만에 74%씩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목할 부분은 기업이 실제 인터넷 사업에 얼마나 관여하는지와 관계없이 발표 당일에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업의 실체보다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미지에 높은 가격이 붙었던 셈이다.

 

3. 왜 적자 기업에 돈이 몰렸을까

초기 기업이 적자를 낸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서비스를 개발하고 고객을 확보하는 데 먼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자를 감수할 이유와 한계를 충분히 따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투자금이 들어오면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이 이어지면 다시 투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강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공개, 즉 IPO는 사업 확장의 자금을 공급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 구조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단계기업과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

기대 형성 인터넷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금 유입 투자와 상장으로 사업 확장 자금을 확보한다.
외형 확대 광고·인력·시설에 돈을 쓰며 성장 속도를 높인다.
기대 강화 성장하는 모습이 다음 투자와 높은 기업가치를 뒷받침한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조건이 있다. 성장이 언젠가는 이익과 현금 유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투자자가 계속 돈을 넣어 주어야만 유지되는 사업이라면, 자금 조달이 막히는 순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4. 펫츠닷컴: 유명해지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달랐다

펫츠닷컴(pets.com)은 인터넷으로 반려동물 사료와 용품을 판매하던 기업이다.

양말 인형 마스코트를 내세운 광고로 이름을 알렸고, 2000년 2월 상장을 통해 약 8,250만 달러를 조달했다.

 

그러나 사료처럼 무겁고 이익률이 낮은 상품을 배송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오프라인 매장과의 경쟁도 피하기 어려웠다.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고 해서 배송비와 판매 비용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추가 자금을 확보하거나 인수자를 찾는 데 실패한 펫츠닷컴은 같은 해 11월 영업 종료와 자산 매각 방침을 밝혔다. 상장으로 돈을 모은 지 약 9개월 만이었다.

 

이 사례를 '인터넷으로 사료를 팔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질문은 그 기업이 당시의 비용 구조와 고객 수요 아래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는가이다.

 

5. 버블은 왜 꺼졌을까

버블의 붕괴를 단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술 기업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아진 상태에서 과잉투자와 성장 둔화, 자금 조달 악화가 맞물렸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당시 분석에 따르면, 일부 IT 인프라의 과잉설비와 투자 수익성 저하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기술 기업의 매출과 이익 증가세가 둔화하자 높은 성장률을 전제로 형성된 주가도 타격을 받았다.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거나 자금 공급을 중단한다.

투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진 기업은 지출을 줄이고, 현금이 부족한 기업은 문을 닫는다.

이들의 지출 축소는 다른 기술 기업의 매출에도 영향을 준다.

상승기에 서로를 밀어 올리던 투자와 성장이 하락기에는 서로를 끌어내리는 관계로 바뀐 것이다.

 

6. 나스닥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나스닥 종합지수는 2000년 3월 10일 종가 기준 약 5,049까지 올라갔다. 이후 2002년 10월 9일에는 1,114.11까지 내려갔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약 78%였다.

이를 단순한 금액으로 바꾸면, 지수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자산 1,000만 원이 약 220만 원 수준이 된 셈이다.

실제 투자에서는 상품 구조와 환율, 비용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하락률과 회복에 필요한 상승률도 대칭이 아니다.

100이 22로 줄었다면 다시 100이 되기 위해 약 355% 올라야 한다.

크게 하락한 자산의 회복이 어려운 이유다.

 

나스닥 종합지수가 2000년의 종가 기록을 넘어선 것은 2015년 4월 23일이었다. 약 15년이 걸렸다.

이는 지수의 명목 수준에 관한 비교이며, 상장폐지된 개별 기업의 주식까지 회복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7. 인터넷의 성공이 모든 투자의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닷컴 버블을 돌아보면 두 가지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

  • 이 기술과 시장은 앞으로 성장할 것인가.
  • 이 기업은 그 성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현재 가격은 그 가능성에 비해 합리적인가.

첫 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도 두 번째 질문의 답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산업이 성장해도 경쟁에서 밀릴 수 있고, 기업이 살아남아도 매입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면 투자 수익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닷컴 버블은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 미래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충분히 따지지 않았던 시장의 이야기다.

 

 

인터넷은 세상을 바꾸었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설명만으로 모든 주가가 정당화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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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margincall.tistory.com/7

 

 

1990년대 후반 월스트리트에는 '질 수 없는 펀드'처럼 보이는 회사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이었다.

 

채권시장의 전설적인 트레이더였던 존 메리웨더가 1994년 설립했고, 금융공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인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스 등이 참여했다. 특히 머튼과 숄스는 파생상품 가격결정 방법을 발전시킨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숄스는 수상 당시 소속 기관 자체가 LTCM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LTCM은 단순한 헤지펀드가 아니었다. 최고의 트레이더와 경제학자, 수학자들이 모여 금융시장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집단에 가까웠다.

 

그런 LTCM은 불과 몇 년 뒤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파산 위기에 빠진다.

문제는 그들이 수학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수학적으로 매우 희박하다고 계산했던 사건이 실제 시장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LTCM은 무엇을 하던 펀드였나

LTCM의 대표적인 투자 방법은 이른바 수렴거래(convergence trade)였다.

예를 들어 두 채권의 성격과 위험이 거의 비슷한데 다음과 같은 가격 차이가 발생했다고 가정한다.

  • 채권 A의 가격: 100
  • 채권 B의 가격: 98

LTCM은 가격이 비싼 A를 팔고, 상대적으로 싼 B를 매수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채권의 가격 차이가 줄어들면 수익을 얻는다.

핵심은 시장이 오를지 내릴지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자산 사이에 발생한 비정상적인 가격 차이가 결국 정상적인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판단하는 방식이다.

 

LTCM은 이러한 방법을 미국 국채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의 국채, 회사채, 모기지 관련 증권, 주식, 스왑과 옵션 등 다양한 시장에 적용했다. 연준 자료에서는 이를 시장 방향과 무관하게 수익을 노리는 '시장중립적'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는 정말 잘 나갔다

초기의 성과만 보면 LTCM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연방준비제도 역사 자료에 따르면 LTCM의 수익률은 다음과 같았다.

연도수익률

1994년 약 20%
1995년 약 43%
1996년 약 41%
1997년 약 17%

 

몇 년 동안 이런 성과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LTCM의 모델에 강한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LTCM이 찾아내는 가격 차이는 대부분 매우 작았다.

예를 들어 100원짜리 자산이 101원이 되는 정도의 차이에서 수익을 내야 한다면 자기자본만 사용해서는 높은 수익률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LTCM은 빌린 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 1. 엄청난 레버리지

LTCM의 전략은 작은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따라서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거래 규모를 크게 만들어야 했다.

그 방법이 바로 레버리지(leverage)였다.

 

1997년 말 LTCM은 자기자본 1달러당 약 30달러의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LTCM은 투자자들에게 자본 일부를 돌려주면서도 기존 투자 규모를 크게 줄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레버리지는 더욱 높아졌다. 

 

1998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미국 SEC가 당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8월 31일 LTCM의 자본은 약 23억 달러로 줄어들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약 1,070억 달러 규모의 거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산 방식에 따라 레버리지는 한때 50배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됐다. 

파생상품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욱 커진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당시 LTCM의 파생상품 계약 명목금액을 약 1조4,000억 달러로 제시했다. 다만 파생상품 명목금액 자체가 실제 손실 가능 금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LTCM은 작은 가격 차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대신, 그 작은 차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돈을 걸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 2. 가격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믿음

LTCM의 전략에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었다.

비슷한 자산 사이의 비정상적인 가격 차이는 결국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다.

 

평상시에는 상당히 합리적인 가정이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결국’이 언제인가였다.

 

가격 차이가 3개월 뒤 정상화되더라도 투자자가 3개월을 버틸 자금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특히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투자자는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전에 증거금을 추가로 요구받을 수 있다.

방향은 맞았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LTCM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제 3. 1998년 러시아가 예상 밖의 선택을 하다

결정적인 충격은 러시아에서 발생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신흥국 금융시장이 불안해졌고, 1998년에는 러시아의 재정 상황까지 악화됐다.

결국 1998년 8월 러시아는 루블화 평가절하와 함께 일부 국내 국채에 대한 지급중단·채무재조정을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공포가 확산됐다.

투자자들은 위험자산을 팔고 미국 국채 같은 안전하고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으로 몰려갔다.

이른바 Flight to Quality, 즉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LTCM 입장에서 문제는 심각했다.

LTCM은 여러 시장에서 벌어진 가격 차이가 좁혀질 것이라고 투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사태 이후 시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좁혀져야 할 가격 차이가 오히려 더 크게 벌어졌다.


시장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LTCM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다양했다.

미국 채권도 있었고 유럽 채권도 있었으며 주식과 파생상품도 있었다.

따라서 위험도 분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의 행동이 단순해졌다.

위험한 것은 팔고 안전한 것은 산다.

 

그러자 서로 관계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자산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독립적으로 움직였던 자산들의 상관관계가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포트폴리오 분산효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문제 4. 손실이 발생하자 레버리지가 다시 공격해왔다

LTCM의 포지션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거래 상대방들은 추가 담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진콜(margin call)이 발생했다.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가격 하락 → 손실 발생 → 추가 담보 요구 → 자산 매각 → 가격 추가 하락

 

레버리지가 낮았다면 가격이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십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던 LTCM에게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1998년 8월 한 달 동안 LTCM은 자산가치의 약 44%를 잃었다. 연초부터 8월까지 손실은 약 25억 달러에 달했으며, SEC 자료에서는 그 가운데 약 21억 달러가 8월 한 달 동안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다.

몇 주 만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헤지펀드 가운데 하나가 파산 직전까지 밀려난 것이다.


LTCM 하나가 망하는데 왜 미국 중앙은행이 움직였을까

일반적인 투자회사가 투자에 실패했다면 투자자들이 손실을 감수하고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LTCM은 규모가 너무 컸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과 은행들이 LTCM에 돈을 빌려주거나 파생상품 거래 상대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LTCM이 갑자기 파산하면 수많은 금융기관이 동시에 LTCM의 포지션을 정리해야 했다.

 

문제는 LTCM이 보유한 자산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모두가 동시에 같은 자산을 팔면 가격이 급락한다.

가격이 떨어지면 LTCM과 전혀 관계없는 금융기관까지 손실을 입는다.

 

그 결과 다시 자산을 팔고, 가격이 추가 하락하는 연쇄적인 강제청산(fire sale)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LTCM을 조사한 뒤 이러한 상황이 금융시장 전체의 기능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월스트리트가 LTCM을 구제하다

1998년 9월 23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중재 아래 주요 금융회사들이 모였다.

결국 14개 은행과 증권회사가 약 36억2,500만 달러를 LTCM에 투입하고 펀드 지분 90%를 가져가는 방식의 구제안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하나 구분할 부분이 있다.

흔히 LTCM 사건을 '연준의 구제금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미국 정부나 연준이 세금을 직접 투입한 것은 아니다.

뉴욕 연은이 금융회사들을 모으고 협상을 중재했지만 실제 자금을 투입한 것은 LTCM의 거래 상대방이던 민간 금융기관들이었다. 

 

LTCM은 즉시 파산하지 않고 포지션을 단계적으로 정리했고, 1999년 말까지 컨소시엄이 투입한 자금 대부분을 돌려줄 수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LTCM은 1998년에 공식적으로 파산한 것이 아니라 파산 직전 민간 자본으로 구제된 사건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공식이 틀렸던 것일까

LTCM 사건이 유명해지면서 자주 등장하는 설명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금융공학 모델이 실패했다."

절반 정도만 맞는 표현이다.

 

머튼과 숄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파생상품 가격결정 이론에 대한 연구였으며, 이 이론 자체가 LTCM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LTCM의 핵심적인 문제는 다음 요소가 결합된 것이었다.

 

과도한 레버리지 + 유동성 위험 + 극단적인 시장 상황에 대한 과소평가 + 비슷한 거래의 집중

SEC 역시 LTCM 문제를 수학적 모델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낮은 확률의 극단적 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위험관리 실패로 평가했다. 

 

수학이 틀렸다기보다 모델이 설명할 수 있는 세계와 실제 금융시장의 세계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 문제였던 셈이다.


LTCM 사태가 남긴 교훈

LTCM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재도 투자에 실패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시장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첫째는 레버리지의 위험이다. 정확도가 높은 전략이라도 레버리지가 지나치게 높으면 단 한 번의 예외적인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둘째는 유동성 위험이다. 장기적으로 가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판단이 맞더라도 그때까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강제로 포지션을 정리해야 한다.

 

셋째는 상관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평상시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던 자산들이 금융위기에서는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넷째는 모델 위험(model risk)이다. 금융모델은 현실을 단순화해 설명하는 도구이지 현실 자체가 아니다.

다섯째는 시스템 리스크다. 하나의 헤지펀드가 충분히 많은 금융기관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펀드의 실패가 금융시장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LTCM 이후 미국 정부의 관련 보고서 역시 과도한 레버리지를 금융시스템 위험의 핵심 요소로 지적했다. 


천재들이 실패한 이유

LTCM에는 당대 최고의 금융학자와 트레이더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계산도 대부분의 시간에는 맞았다.

문제는 투자에서 중요한 것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자주 맞느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99번 작은 수익을 내더라도 한 번의 손실이 99번의 수익보다 크다면 투자 전략은 결국 실패한다.

특히 빌린 돈을 수십 배 사용한다면 그 한 번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LTCM이 남긴 가장 유명한 교훈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은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바로 그 순간이 투자자가 가장 많은 돈을 잃는 순간이기도 하다.

 

LTCM은 금융공학이 쓸모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정교한 금융공학이라도 레버리지와 유동성, 인간의 공포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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