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한 송이를 팔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을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꽃값이 치솟다가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나라 전체가 꽃 투기에 빠져 파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가 섞여 있다.

극히 희귀한 품종의 최고가, 아직 땅속에 있는 구근에 대한 계약가격, 일반적인 튤립의 가격이다.

집값에 비견할 만한 거래가 있었다는 것과 모든 튤립이 집값이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튤립은 왜 비싼 수집품이 되었을까?

당시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오늘날의 흔한 봄꽃이 아니었다.

부유해진 상인과 수집가가 정원에 들이는 이국적인 식물이었고, 희귀한 무늬와 색을 가진 구근은 취향과 지위를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재배업자에게는 새로운 구근을 늘려 판매할 수 있는 종자 자산이기도 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튤립이라도 품종과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특히 희귀 품종은 원하는 사람에 비해 당장 구할 수 있는 구근이 적었다. 수집가에게는 아름다움이, 재배업자에게는 증식 가능성이 값의 근거였다. 여기에 앞으로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기대가 더해졌다.

 

P. 코스의 1637년 튤립 그림

이 그림에 나온 품종이 집 한 채 값에 팔렸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 집 한 채 값이었을까?

역사가 앤 골드가는 당시 문서를 조사한 결과, 최고가에 이른 일부 튤립의 가격이 약 5,000길더로 좋은 집 한 채 값에 가까웠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집값에 맞먹는 튤립이 있었다"는 말에는 근거가 있다. 다만 이는 드문 최고가 사례다. 더구나 거래 문서의 금액을 모든 매수자가 실제로 현금 지급까지 마친 가격으로 바꾸어 말해서도 안 된다.

 

골드가가 확인한 자료에서 구근 구입에 300길더 이상을 쓴 사람은 37명이었다.

당시 숙련된 장인의 연간 소득에 비견되는 돈이지만, 이 숫자는 '한 송이에 300길더를 낸 사람이 37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구근에 그 이상을 지출한 사람의 수다. 많은 튤립은 그보다 훨씬 저렴했고, 고가 거래자는 주로 자금력이 있는 상인층이었다. 

 

여기서 '한 송이'라는 표현도 조금 부정확하다.

문제가 된 고가 거래의 대상은 대개 꽃병에 꽂힌 꽃 한 송이가 아니라 땅에 심긴 구근, 또는 나중에 그 구근을 넘겨받을 권리였다.

집값이라는 말만 남기면 실제 거래 대상을 놓치기 쉽다.

 

널리 퍼진 이야기사료에 비춰 본 설명
튤립은 모두 집 한 채 값이었다 일부 희귀 구근의 최고가가 집값에 가까웠다
꽃 한 송이를 손에서 손으로 팔았다 구근을 나중에 인도하기로 한 계약도 거래됐다
온 국민이 투기했다 참여자는 비교적 적었고 상인·숙련 장인 등이 중심이었다
가격 붕괴로 네덜란드 경제가 무너졌다 계약 분쟁은 있었지만 전국적 경제 붕괴의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구근이 땅속에 있는데 어떻게 거래했을까?

튤립 구근은 계절에 맞춰 땅에 심어 두어야 했다. 겨울에는 구근을 바로 꺼내 건네기 어려웠으므로, 봄이나 초여름에 인도하기로 약속하고 가격을 정한 계약이 오갔다. 1636년 말부터 1637년 초에는 이 계약의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 

 

이를 오늘날의 선물거래와 완전히 같은 제도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점은 계약서에 적힌 금액과 즉시 오간 현금이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속한 가격이 1,000길더로 올라가더라도 구근을 건네고 돈을 치르는 날은 뒤에 올 수 있었다. 가격이 꺾이자 "누가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가"가 분쟁이 되었다.

 

당시 튤립 도감 자체도 가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17세기 튤립 도감에 꽃의 이름과 평가액, 별도의 가격표가 함께 남아 있다고 소개한다.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품종과 가치를 기록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1637년 야코프 마렐이 그린 튤립 도감의 한 장.

 

1637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가격 상승은 1636년 말부터 빨라졌고, 1637년 2월 첫째 주에 거래가 꺾였다.

매수자가 줄어들자 높은 가격에 체결된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해졌다.

 

역사 자료가 부족해 단 하나의 원인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골드가는 공급 증가 우려와 짧은 기간의 급등세에 대한 불안을 가능성으로 본다.

 

별도의 금융사 연구는 구근이 싹트면서 앞으로의 공급량이 드러났다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는 연구자의 해석이지 확인된 단일 원인이 아니다. 

 

경제학자 피터 가버는 희귀 구근의 높은 가격을 새 품종 시장의 희소성과 증식 과정으로 설명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반면 마지막 한 달 동안 보통 구근의 가격까지 급등하고 붕괴한 부분은 버블일 가능성을 남겨 두었다. "모든 가격이 터무니없었다"와 "투기가 전혀 없었다"는 양쪽 단정 모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전체가 파산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당대의 풍자화와 노래는 튤립 거래자를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그렸다. 후대의 저술가들은 이 풍자를 사실 기록처럼 되풀이했다. 특히 1841년 찰스 매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거치며 "온 국민의 투기, 대규모 파산, 경제 붕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사료에 등장하는 풍자는 당시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 주지만, 파산자 수를 집계한 통계는 아니다. 

 

골드가는 튤립 거래가 치명적인 원인이었다고 확인되는 파산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 갈등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약속한 대금과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돈 사이에 다툼이 생겼고, 신용과 평판이 상했다. 그러나 이를 네덜란드 경제 전체의 붕괴로 확대할 증거는 부족하다. 

 

얀 브뤼헐 2세의 《튤립 광풍의 알레고리》(약 1640~1650년). 거래자를 풍자한 후대의 작품으로, 실제 시장 참여자나 파산 규모를 기록한 그림은 아니다.

 

튤립 버블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튤립 버블을 단순히 “사람들이 꽃에 속았다”는 이야기로만 읽으면 희귀품의 실제 수요와 당시 거래 관행을 놓친다. 반대로 고가 품종에 살 이유가 있었다고 해서, 1636~1637년의 급등과 계약 분쟁을 지워도 안 된다.

투자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자극적인 최고가보다 그 가격에 실제로 몇 건이 거래됐는지, 지급이 끝났는지, 가격 하락 시 계약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다. 한 건의 호가를 시장 전체의 가치로 일반화하거나, 장부상의 수익을 손에 쥔 현금으로 착각하면 위험을 잘못 읽게 된다.

튤립 한 구근이 집값에 가까웠던 사례는 있었다. 그러나 튤립이 모두 집값이었던 것도, 그 가격 붕괴가 네덜란드 전체를 파산시킨 것도 아니다. 오래 살아남은 것은 꽃값만큼이나 강렬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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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땅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

일본 버블경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다.

 

오늘날에는 과장된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말에는 땅값과 주가가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당시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부동산의 평가액이 커지는 것과 나라 전체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땅값이 두 배가 되었다고 해서 그 위의 가게가 물건을 두 배로 팔거나, 공장이 제품을 두 배로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버블의 핵심은 자산가격 상승을 믿고 빚을 늘렸다는 데 있었다.

가격이 내려간 뒤에도 빚은 그대로 남았다. 그 부담은 투자자와 기업을 넘어 은행과 경제 전체로 번져 나갔다.

 

도쿄 땅으로 정말 미국을 살 수 있었을까?

당시 일본의 부동산 과열을 설명하는 이야기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 도쿄의 땅값을 미국과 비교하기도 하고, 도쿄 황거 부지의 추정 가치를 캘리포니아 전체 부동산과 비교하기도 한다. 황거와 캘리포니아를 비교하는 이야기는 해외 회고 기사에도 등장한다. 

다만 이를 실제 거래 가능한 금액이나 정밀하게 확정된 통계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비교 시점, 환율, 토지의 범위와 평가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을 산다"는 표현 자체도 토지와 건물, 기업과 국가 전체를 뒤섞는다.

 

일부 지역의 높은 거래가격을 넓은 면적에 적용한 평가액은, 그 땅을 모두 팔아서 손에 쥘 수 있는 현금과 같지 않다.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가격부터 달라진다. 황거처럼 통상적인 매매 대상이 아닌 토지는 가정의 비중이 더욱 크다.

이 표현은 일본의 땅값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 보여 주는 상징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플라자 합의 이후, 돈을 빌리기 쉬워졌다

출발점을 이해하려면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일본·서독·영국·프랑스는 지나치게 강해진 달러의 가치를 낮추는 방향으로 협력했다. 이후 엔화가 빠르게 강해지면서 일본 수출기업의 부담이 커졌다. 일본은 경기와 내수를 떠받치기 위해 금융완화에 나섰다. 

 

환율의 영향을 단순한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물건을 1달러에 팔았을 때 환율이 1달러당 240엔이면 240엔을 받는다. 환율이 120엔으로 내려가면 같은 1달러 매출로 받는 돈은 120엔이 된다. 실제 기업은 가격과 비용을 조정하지만, 엔고가 수출기업에 부담이 되는 원리는 이와 같다.

 

일본은행의 공정할인율은 1986년 초 인하가 시작되기 전 5.0%에서 1987년 2월 2.5%로 내려갔다. 이 수준은 1989년 5월까지 유지되었다. 공정할인율은 당시 중요한 정책금리였으며, 일반 가계가 적용받는 대출금리와 같은 수치는 아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돈을 빌려 투자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그 돈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새로운 생산시설에 쓰일 수도 있지만, 이미 가격이 오른 땅과 주식을 더 비싸게 사는 데 쓰일 수도 있다.

 

플라자 합의만으로 일본의 버블과 장기 침체가 모두 결정되었다고 보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금융완화에 더해 대출 관행과 감독, 자산가격에 대한 낙관이 어떻게 결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땅값 상승이 다시 대출을 늘렸다

버블이 커지는 과정에서는 토지와 신용이 서로를 밀어 올렸다. 땅값이 오르면 담보의 평가액이 커지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돈을 빌릴 여지가 생긴다. 빌린 돈이 다시 부동산으로 향하면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일본은행 연구는 당시 버블의 특징으로 자산가격 급등, 경기 과열, 통화와 신용의 확대를 함께 지목한다. 저금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와 지나친 낙관도 중요한 요소였다. 

 

가령 1억 엔짜리 건물에서 연간 300만 엔의 순수익이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 수익률은 3%다. 임대수익이 그대로인데 건물값만 2억 엔으로 오르면 수익률은 1.5%로 내려간다.

그런데도 “내년에 2억 5천만 엔에 팔 수 있다”는 기대가 강하면 매수자는 계속 나타날 수 있다. 이때 투자의 근거는 건물이 벌어 주는 돈보다 다음 매수자가 지불할 가격에 가까워진다.

위 예시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산의 가격과 그 자산이 벌어들이는 현금 사이의 거리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가 상승의 조건을 바꾸었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 공정할인율을 2.5%에서 3.25%로 올렸다. 이후 인상이 이어지면서 1990년 8월에는 6.0%에 도달했다. 

1990년 3월에는 대장성이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를 억제하는 지침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내용은 부동산업 대출 증가율을 전체 대출 증가율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모든 부동산 대출을 금지한 조치는 아니었다. 

돈을 빌리는 비용은 올라가고 추가 대출은 어려워졌다.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에 기대어 투자한 사람들에게 불리한 환경이 된 것이다.

 

따라서 금리 인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붕괴의 원인을 금리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과도한 차입과 높은 가격이 쌓여 있었기에 금융여건의 변화가 큰 충격으로 번질 수 있었다.

주식이 먼저 꺾이고, 부동산이 뒤따랐다

닛케이225는 1989년 12월 29일 종가 38,915.87을 기록했다. 이후 주가가 급락했고, 토지가격은 지역과 용도, 지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990~1991년을 전후해 정점을 지나 하락했다. 두 시장이 같은 날 동시에 무너진 것은 아니다. 

시기 주요 사건 의미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엔고와 이후 정책 대응의 배경
1987년 2월 공정할인율 2.5% 낮은 차입비용이 지속되는 환경
1989년 5월 공정할인율 인상 시작 금융완화에서 긴축으로 전환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225 종가 38,915.87 당시 주식시장의 정점
1990년 3월 부동산 대출 증가 억제 지침 부동산으로 향하는 신용 확대 제한
1990년 8월 공정할인율 6.0% 차입 부담 확대
1990~1991년 전후 주요 토지가격 지표의 고점 형성 부동산 하락으로 충격 확산
1997~1998년 대형 금융기관 위기 누적된 금융 부실이 본격적으로 표면화

*연표는 위의 일본은행 자료와 아래 ADBI 연구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토지가격의 고점은 지역·용도·지표별로 다르다.

 

가격이 내려가도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기 돈 2천만 엔과 대출 8천만 엔으로 1억 엔짜리 부동산을 샀다고 가정해 보자.

이자와 세금, 거래비용은 제외한 계산이다.

구분 구입 당시 가격 30% 하락한 뒤
부동산 가치 1억 엔 7천만 엔
남은 대출 원금 8천만 엔 8천만 엔
자산에서 빚을 뺀 금액 2천만 엔 -1천만 엔

 

자산가격은 30% 떨어졌지만 자기자본은 모두 사라졌다. 부동산을 팔아도 대출 원금 1천만 엔이 남는다. 이것이 차입투자의 손실 확대 효과다.

 

같은 일이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면 은행도 영향을 받는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어려워지고, 담보를 팔아도 대출을 모두 메우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대출이 부실채권으로 남는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된 대출과 담보가치 하락이 은행 부실을 키웠다. 은행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 하락도 자본 여력을 약화시켰다. 기업의 어려움과 금융기관의 어려움이 맞물린 것이다.

 

왜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을까?

가격 하락 뒤의 대응도 문제였다. 자산가격과 경기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부실을 인정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늦어졌다. ADBI 연구는 초기 대응의 지연과 불충분함이 위기를 장기화한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빚이 무거운 기업은 새 공장을 짓거나 직원을 채용하기보다 기존 부채를 줄이려 한다. 은행 역시 손실이 쌓이면 새로운 대출에 신중해진다. 돈을 빌리려는 쪽과 빌려주는 쪽이 함께 움츠러들 수 있다.

 

이처럼 민간이 투자와 소비보다 부채 상환을 우선하면서 수요가 약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리처드 쿠가 일본의 장기 침체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 대표적인 관점이다. 금리를 낮추더라도 기업이 추가 차입을 원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더 큰 금융위기로 나타났다. 1997년 야마이치증권과 홋카이도척식은행 등이 무너졌고, 1998년에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이 일시 국유화되었다. 이후 공적자금 투입과 부실 정리가 진행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은 그 기간 내내 생산과 성장이 완전히 멈췄다는 뜻은 아니다. 회복과 후퇴가 반복되었고, 장기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과 금융 부실이 이어졌다는 표현이다. 이후 수십 년의 경제 문제까지 하나의 사건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주가지수의 회복에는 34년이 넘게 걸렸다

2024년 2월 22일 닛케이225는 39,098.68로 마감하며 1989년의 종가 최고치를 넘어섰다. 약 34년 2개월 만이었다. 

다만 모든 투자자가 원금을 회복하는 데 똑같이 34년을 기다렸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엔화 표시 가격지수의 비교다. 매수 시점과 종목, 배당 재투자, 환율과 물가에 따라 실제 투자성과는 달라진다.

 

이 기록이 보여 주는 것은 기다림의 길이다. 시장 전체가 언젠가 회복하더라도, 투자자가 그때까지 빚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일본 버블은 자산의 평가액과 상환 능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가격이 올라갈 때에는 담보가 든든해 보인다. 그러나 빚을 갚는 순간 필요한 것은 평가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현금이다.

 

땅값이 영원히 오른다는 믿음은 무너질 수 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빌린 돈은 믿음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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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의 닷컴 버블

 

1990년대 말, 주식시장에서는 회사 이름에 닷컴(.com)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기업의 실적보다 앞서 달리던 시기였다.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러나 인터넷 기업에 투자한 사람 모두가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미래 산업을 알아보는 일과 적정한 가격에 투자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은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기업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지나치게 앞질렀던 사건이다.

 

1. 닷컴 버블이란?

닷컴 버블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기술 기업으로 투자금이 몰리며 주가가 급등했다가, 2000년부터 급격히 꺼진 현상을 말한다. '닷컴'은 기업들이 웹사이트 주소에 사용하던 .com에서 나온 표현이다.

당시에는 쇼핑과 광고, 정보 검색 등 다양한 사업이 인터넷으로 옮겨 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기존 산업의 규칙이 달라진다는 ‘신경제’에 대한 낙관론도 확산되었다.

실제 변화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당시 기술 발전과 전자상거래 확산, 생산성 개선이 투자 열기를 뒷받침했다고 설명한다. 다만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소비자의 실제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투자까지 늘어났다.

 

2. 정말 이름만 바꿔도 주가가 올랐을까

'인터넷 기업이면 무조건 올랐다'는 표현은 과장이다.

모든 기업이 같은 수익률을 기록하거나 끝없이 상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나올 만한 현상은 실제로 관찰되었다.

2001년 『Journal of Finance』에 실린 「A Rose.com by Any Other Name」은 인터넷과 관련된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기업들의 주가 반응을 분석했다. 연구에서는 사명 변경 발표 전후 10일 구간의 누적 초과수익률이 약 74%로 나타났다.

이는 시장 움직임 등을 감안한 비교 기준보다 얼마나 더 올랐는지를 뜻한다. 모든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10일 만에 74%씩 올랐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목할 부분은 기업이 실제 인터넷 사업에 얼마나 관여하는지와 관계없이 발표 당일에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사업의 실체보다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미지에 높은 가격이 붙었던 셈이다.

 

3. 왜 적자 기업에 돈이 몰렸을까

초기 기업이 적자를 낸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서비스를 개발하고 고객을 확보하는 데 먼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자를 감수할 이유와 한계를 충분히 따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투자금이 들어오면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이 이어지면 다시 투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강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공개, 즉 IPO는 사업 확장의 자금을 공급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이 구조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단계기업과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

기대 형성 인터넷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금 유입 투자와 상장으로 사업 확장 자금을 확보한다.
외형 확대 광고·인력·시설에 돈을 쓰며 성장 속도를 높인다.
기대 강화 성장하는 모습이 다음 투자와 높은 기업가치를 뒷받침한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조건이 있다. 성장이 언젠가는 이익과 현금 유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투자자가 계속 돈을 넣어 주어야만 유지되는 사업이라면, 자금 조달이 막히는 순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4. 펫츠닷컴: 유명해지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달랐다

펫츠닷컴(pets.com)은 인터넷으로 반려동물 사료와 용품을 판매하던 기업이다.

양말 인형 마스코트를 내세운 광고로 이름을 알렸고, 2000년 2월 상장을 통해 약 8,250만 달러를 조달했다.

 

그러나 사료처럼 무겁고 이익률이 낮은 상품을 배송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오프라인 매장과의 경쟁도 피하기 어려웠다.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고 해서 배송비와 판매 비용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추가 자금을 확보하거나 인수자를 찾는 데 실패한 펫츠닷컴은 같은 해 11월 영업 종료와 자산 매각 방침을 밝혔다. 상장으로 돈을 모은 지 약 9개월 만이었다.

 

이 사례를 '인터넷으로 사료를 팔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질문은 그 기업이 당시의 비용 구조와 고객 수요 아래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는가이다.

 

5. 버블은 왜 꺼졌을까

버블의 붕괴를 단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술 기업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높아진 상태에서 과잉투자와 성장 둔화, 자금 조달 악화가 맞물렸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당시 분석에 따르면, 일부 IT 인프라의 과잉설비와 투자 수익성 저하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기술 기업의 매출과 이익 증가세가 둔화하자 높은 성장률을 전제로 형성된 주가도 타격을 받았다.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거나 자금 공급을 중단한다.

투자금을 구하기 어려워진 기업은 지출을 줄이고, 현금이 부족한 기업은 문을 닫는다.

이들의 지출 축소는 다른 기술 기업의 매출에도 영향을 준다.

상승기에 서로를 밀어 올리던 투자와 성장이 하락기에는 서로를 끌어내리는 관계로 바뀐 것이다.

 

6. 나스닥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나스닥 종합지수는 2000년 3월 10일 종가 기준 약 5,049까지 올라갔다. 이후 2002년 10월 9일에는 1,114.11까지 내려갔다. 고점 대비 하락률은 약 78%였다.

이를 단순한 금액으로 바꾸면, 지수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자산 1,000만 원이 약 220만 원 수준이 된 셈이다.

실제 투자에서는 상품 구조와 환율, 비용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하락률과 회복에 필요한 상승률도 대칭이 아니다.

100이 22로 줄었다면 다시 100이 되기 위해 약 355% 올라야 한다.

크게 하락한 자산의 회복이 어려운 이유다.

 

나스닥 종합지수가 2000년의 종가 기록을 넘어선 것은 2015년 4월 23일이었다. 약 15년이 걸렸다.

이는 지수의 명목 수준에 관한 비교이며, 상장폐지된 개별 기업의 주식까지 회복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7. 인터넷의 성공이 모든 투자의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닷컴 버블을 돌아보면 두 가지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

  • 이 기술과 시장은 앞으로 성장할 것인가.
  • 이 기업은 그 성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현재 가격은 그 가능성에 비해 합리적인가.

첫 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도 두 번째 질문의 답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산업이 성장해도 경쟁에서 밀릴 수 있고, 기업이 살아남아도 매입 가격이 지나치게 높았다면 투자 수익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닷컴 버블은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 미래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충분히 따지지 않았던 시장의 이야기다.

 

 

인터넷은 세상을 바꾸었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설명만으로 모든 주가가 정당화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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